오마이뉴스는 2000년 '모든 시민은 기자다!'를 모토로 출범한 대안 언론이다. 2006년 12월, 시민의 더 많은 참여를 위해 편집권까지 시민에게 내주는 획기적인 '시즌2' 웹사이트 구축이 목표였다. 방향과 기획 아이디어는 오마이뉴스 내부에서 정리가 된 상태였기 때문에, 어떻게 하면 시각적으로 쉽고 편하게 시민의 참여를 보여주고, 유도할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 프로젝트 - 오마이뉴스 웹사이트 리뉴얼
- 고객사 - 오마이뉴스
- 에이전시 - 그라비티인터랙티브
- 기간 - 2006.12 ~ 2007.08
- 역할 - 제안 PM (웹사이트 리뉴얼 제안)
- 팀 - 김형준(Creative Director), 강상희(Design), 허성(구축 PL/Program)
- 주소 - http://www.ohmynews.com
- 문의 - aprilleaf@gmail.com
<오마이뉴스> 웹사이트 개편 제안은 '내 인생 제안'이었다. 제안서의 퀄리티를 떠나서, 내가 존경하는 분과, 존중하는 사람들 앞에서, 그들의 과제에 대해 준비하고 프리젠테이션 한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설렘이었다.
<오마이뉴스>와의 만남
<오마이뉴스>는 오연호 대표가 '모든 시민은 기자다!'를 모토로 2000년 2월 22일 2시 22분에 문을 연, 시민 언론이자, 대안 언론이다. 시민의 꽃이 진 이야기, 시민의 반려견이 숨진 이야기도 1면 톱이 될 수 있다는 게 당시 오 대표의 생각이었고, 시민 누구나 기사를 송고할 수 있었다. 당시, 한경자동차신문사에서 수습 기자 생활을 막 떼고, 이타임즈인터넷(현 전자신문인터넷)에서 웹기획자로 새 출발을 시작한 내게는 엄청난 충격이었다. <오마이뉴스>에 참여한 상근 기자들의 쟁쟁한 면모를 보고, 이력서를 내볼 용기조차 낼 수 없었다 (그래, 그건 정말 용기가 없었던 거다. 후회한다.)
오연호 대표님과의 만남
2002년도, 갑갑한 마음이 조금 들어서, 서강대학교 언론대학원에 진학했다. 공부를 하고 싶어서였지만, 외부에서 생각하듯이, 인맥과 학력 관리를 위해 온 것 같은 분들이 많았다. 특히, 학자금을 모두 지원해주는, 대기업, 주류언론사 출신들에서 그런 게 많이 느껴졌다. 그 속에, 눈에 띄는 한 분이 있었다. 말수가 적고, 항상 무슨 생각을 골똘히 하시는 것 같던 오연호 대표님. 그분은 오마이뉴스 사례를 중심으로 시민 언론을 진지하게 학문적으로 연구하고자 하는 것 같았다. 시험으로도 석사학위를 받을 수 있는 특수대학원이었지만, 오 대표님은 마침내 근사한 한 권의 논문으로 그 생각들을 정리해낸 것으로 기억한다.
제안 요청
<오마이뉴스>로부터 제안 참여 요청이 왔을 때, 너무나도 기뻤다. 꼭 수주하고 싶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웹 에이전시에서 일하면서 강한 동기를 부여 받을 수 있는 얼마 안된 기회라고 생각했다. 고객사 담당자님께서 직접 찾아오셔서 '시즌2'에 해당하는 개편 내용을 설명해 주셨다. 대강의 기획은 이미 수립되어 있었고, 디테일한 부분까지 내부에서 마무리를 해나갈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개발도 내부 개발팀에서 진행할 예정이니, 제안 PT는 '디자인 시안'만 가지고 했으면 한다고 하셨다.
화면설계와 시안 디자인
미팅 후, 내 머리 속은 이미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오마이뉴스> 5년의 이야기를, 가장 중요했던 이슈들을 꼽아, '또 다른 오마이뉴스 한 장(시안)'을 만들자. 그것은 일종의 '헌정'이라고 생각했다. <오마이뉴스> 5년간의 기사를 모두 뒤졌다. 내가 기억하고 있던 주요 이슈와, 미처 몰랐던 뉴스들 중에 중요한 것을 추려서, A3 용지 1장에, '한 판의 오마이뉴스'를 그렸다. 디자이너가, 일부 텍스트를 반복해서 'Copy & Paste'하는 관행을 두고, 이번 시안만은 그렇게 하지 말고, 이 화면설계 그대로 모든 텍스트를 그대로 넣어달라고 부탁했다.
<오마이뉴스>가 영국 가디언 선정, 세계 5대 뉴스사이트에 선정된 것을 톱기사로 꼽고, 인천공항 기자실에서 쫓겨난 뉴스게릴라의 사연을 부톱 기사 중 하나로 꼽았다.
프레젠테이션
전자신문에서 일할 때, <오마이뉴스>에 한 명의 웹 디자이너 사연이 주요 기사로 실렸다. 한 웹디자이너가, 매일 야근으로 지쳐 생활하는데, 어느 날 갑자기, 어머니께서 비소세포암에 걸리셨다는 누나의 전화를 받고 고향으로 내려가는 길의 슬픔을 담담하게 써 내려간 글이었다. 먼 타향에 홀로 와서, 부모님 안부도 물을 시간도 없이, 일에 지쳐 살아가고 있는 자신을, 문득 바라보게 된 마음이 얼마나 황망할까. 당시 팀장님께, '이 뉴스는 전자신문에서 쓸 수 없는 기사다. 우리가 인터넷매체이니, 우리가 이런 뉴스를 다뤄져야 한다. 플래시로 제작해서, 업계 뉴스로 올리게 해달라!'고 설득하고, 30만원인가를 들고 외주자를 찾아 플래시로 제작한 일이 있었다. 배경 음악은 남진의 '어머니'였다.
프레젠테이션이 시작되자, 나는 그 플래시 파일을 플레이했다. 그리고, <오마이뉴스>가 내 인생에서 왜 중요했는지를 말씀 드리고 나서, <오마이뉴스>의 5년이 압축된 시안을 설명 드렸다. 프레젠테이션을 마치자, 오연호 대표께서 '이 업체는 우리를 잘 알고 있네요.'라고 말씀하셨다. 프레젠테이션 장을 나올 때,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됐어! 이제 됐어! 떨어져도 괜찮아! 내가 만족한 제안이면, 그걸로 됐어!"
아쉬움
나는 <오마이뉴스>를 직접 마무리하고 싶었다. 하지만, 회사 입장에서는 고객이 기획과 개발을 "해 주는" "디자인 프로젝트"로 생각했다. 아울러, 당시 막 관심을 끌던 웹 기술, FLEX나 AJAX를 적용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로 생각하기도 했다. 나는 <오마이뉴스>를 테스트 베드로 삼을 수 없다고 반대했다. 또, 고객이 '기획'을 해준다고 하면, 정말 '내부 기획자' 없이 프로젝트가 굴러 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또는 생각하는 척 하는) 관점에 실망하기 시작했다. 고객에서 기획에 참여하면 고마운 일이지만, 고객이 생각하는 '기획'의 일과, 에이전시에서 감당해야 하는 '기획'의 일은 엄연히 다르다. 고객 측에서 그렇게 말한다고 해도, 견적서에서 기획 항목을 삭제하면서 협상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게 그때나 지금이나 내 생각이다. 물론, 그렇게 해서 내게 다른 프로젝트를 맡기고 싶었을(그래야 돈을 더 많이 버니까) 회사의 입장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런 상황에서 구성원의 사기 저하에 대한 고민은 전무했다는 것이 너무나도 아쉬울 뿐이다.
아무튼, 며칠밤을 새워가며 제안을 하고, 수주를 하고 나자마자, 기대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는 논의를 보고, 나는 기대를 접고, 다른 프로젝트를 찾아 떠났다. <오마이뉴스>는 그 후 장기 프로젝트가 되었고, 투입된 인력들의 의욕은 쉽게 사그러들었다. <오마이뉴스>는 그렇게, 내게 희열이자, 아픔, 미안함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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